에비스가하나 조선소 터

恵美須ヶ鼻造船所跡

서양식 군함의 건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조선소

1853년 6월에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1794~1858)이 4척의 군함을 이끌고 에도 근교의 우라가 만에 도착했습니다. 1639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대부분 차단했던 일본에게 있어, 페리의 내항은 틀림없는 군사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페리가 일본에 도착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막부는 2세기가 넘게 이어져 왔던 대형 군함의 건조 금지령을 폐지했습니다.

페리의 무력을 이용한 개국 요구에 주목했던 혼슈 서쪽 끝자락의 조슈번에서는 1856년 2월, 도쿠가와 막부의 허가를 받아 서양식 배 건조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개월만에 에비스가하나에서 25m 길이의 헤이신마루를 진수(進水)했고, 이듬해 6월에는 앞바다의 40km 떨어진 미시마 섬까지 시운전에 성공했습니다.

헤이신마루는 일본에 체류 중이었던 1854년의 쓰나미로 인해 함대를 잃은 러시아의 푸탸틴 제독(1803~1883)이 대체 함대 ‘헤다 호’ 건조에 사용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푸탸틴은 1855년에 러일 화친 조약을 맺고 일본과 국교를 수립했던 책임자였습니다. 헤다 호는 총 길이 24m에 2개의 돛대를 설치한 서양식 범선으로, 이후 일본에서 건조된 초기 서양식 범선 설계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60년에는 조슈번에서 두 번째 서양식 배인 ‘고신마루’가 완성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배는 총 길이 43m에 3개의 돛대와 8개의 대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설계는 우라가와 나가사키에서 조선 기술을 배웠던 후지이 가쓰노신(생몰년 미상)이 맡았습니다. 1863년, 조슈번과 구미 열강이 일으킨 시모노세키 전쟁에서 미국 군함에 격침되지만, 조슈번에서 인양하면서 1868년경까지 사용된 후 매각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조슈번에서는 배를 건조하지 않고 차츰 입국이 허가되면서 내항한 서양의 무역상에게서 배를 구매했습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에서 건조된 2척의 배는 조슈번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근대화에 의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헤이신마루는 지역 내 오이타야마 다타라 제철소에서 공급받은 못과 쇠붙이, 닻 등을 장비했으며 두 척 모두 지역의 남자 주민들이 선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에비스가하나 조선소 옛터에서는 200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서 로프 제작소, 철공소, 제재소, 증기 작업장, 설계 사무소, 건선거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습니다.

2015년, 에비스가하나 조선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한국어 해설문은 관광청의 2024년도 ‘지역 관광자원의 다국어 해설 정비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어 원어민의 편집 및 번역을 거쳐 작성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요금 무료
교통 하기 반사로에서 0.6km/0.37마일
해변쪽으로
주소 하기 진토 5159-14
영업 시간 연중무휴
휴무일 휴일 없음
웹사이트 https://www.hagishi.com/ko/world-heri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