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반사로

萩反射炉

19세기 중반 일본은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서양의 기술, 특히 군사기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반사로는 철제 대포의 주조에 필요한 금속 용해로로, 하기 번이 해방력 강화를 위해 도입한 설비의 하나입니다.하기 지역은 해안 방비 강화의 일환으로 강철 대포 생산에 필요한 제련소인 반사로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에는 굴뚝 일부와 10.5m 높이의 안산암 더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기 지역의 기록에서 1856년 반사로를 잠시 가동했었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하기 반사로는 시험 삼아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반사로 유적은 니라야마(시즈오카현)와 하기에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일본의 산업 기술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현지에서 채굴된 안산암을 사용해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두 개의 굴뚝 유적은 하기 지역에서 막 시작된 산업화의 "시행착오"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반사로 유구는 하기 지역 외에 니라야마(시즈오카현)와 옛 슈세이칸(가고시마현)에만 존재합니다. 일본의 산업기술 역사상 매우 귀중한 유적입니다.
2015년 하기 반사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등재되었습니다.

기본 정보

주소 하기 진토 4897-7